미국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파산 전력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상황이면 실패한 기업인이 한 나라의 최고 자리까지 오르는게 가능할까.

◆ 트럼프, 기업파산後 개인 빚은 조정받아...대통령 등극에 걸림돌 안돼

한국의 파산제도와 문화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관기 변호사는 “우리 파산법은 미국의 1938년 법을 모델로 제정됐고 그 근간이 유지되고 있는데, 본 고장인 미국은 이미 지난 1978년 근본적인 개정작업이 있었다”며 "말하자면 2차대전 때 쓰던 미국 군함을 우리 해군이 인도받아 오랬동안 쓰고 있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낡은 법제를 빌려와 그대로 쓰고 있는 수준이라는 것.

파산을 보는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가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 이름이 붙은 회사들을 파산법정을 통해 회생했지만 개인연대파산에는 이르지 않았다.  "트럼프가 파산법정으로 갈 경우 개인 채권 전액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채권은행들이 트럼프의 개인채무 조정 신청을 받아줬다”며 “우리나라와 달리 기업인들을 철저히 보호하는 파산제도 운영이 선진적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실패한 기업인들을 밟고 지나가는 우리나라의 분위기와는 완연히 다르다는 것.

▲ 김관기 변호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의 사례가 우리나라 파산자의 재기 지원이 시대착오적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 맥킨지 보고서 "한국, 실패한 기업가 재기 못해..청년들 창업 주저"

지난 2013년 4월에 발간된 맥킨지 글로벌 그룹의 보고서도 우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멕킨지는 보고서에서 "한국에는 파산법이 기업가에게 충분한 보호를 주지 않기 때문에 기업가가 실패후 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젊은이들이 창업을 주저하고, 좋은 직장을 만들지 못해 중산층의 소득이 감소하며 다시 기업의 기반인 유효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악순환"이라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미국도 우리와 비슷하지만, 유럽의 경우는 사회안전망이 잘 짜여있으며 이자율 상한제 등 금융 산업이 자유롭지 못하다”며 “때문에 유럽국가에서는 원래 파산을 해도 면책시켜주지 않았지만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 면책제도가 적극 운용되는 등 시대변화를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채무자들은 금융 산업에 `모든 걸 다 빼앗긴다`는 생각이 약하고, `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할 뿐 `나라(사회 시스템)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들 `가난이 자기 죄`라고 교육을 받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그런 생각이 만연하면 중산층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옷을 벗고 다니는 도덕군자보다는 차라리 조금은 양심에 털이 나도 자기 것을 지키는 `영악한` 중산층이 낫다는 생각을 사회가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개인간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발생한 채권, 채무 관계에 대해 국가가 파산법을 통해 이를 무효화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반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일부 있다. 

김관기 변호사는  이에 대해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성과 관련된 문제”라며 이의를 제기한다. 

개인의 경제활동이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외부성이라고 할때, 예를 들어 공장이 오염물질을 배출해 주위 사람이 호흡기 손상을 입는 것이 전형이다. 채무자를 비참한 상태까지 억압하는 것을 방치하는 경우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는 “채무자가 길거리에 나앉았을 때 현대 복지국가에서는 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게 되는 것은 경제외부성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채무자가 비참한 상태에 이르러 자살하는 것 역시 최소한 제3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고,  채무자가 빚을 갚겠다고 강도를 하는 일도 외부성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국가가 개입할 권능이 있다는 것.

◆"채무는 자유시장경제 뒷받침…파산은 정상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이쯤 되니 김 변호사는 빚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변호사로 읽혀졌다. "그렇지 않다"는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화폐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연결하는 것이고,  신용의 부여 즉 부채는 채무라는 형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채무 관계는 자유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술”이라는 설명했다.

이어   “부채는 사람을 근면하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채무자를 노예보다 못한 상태로 떨어트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 뿐”이라며 “빚의 근본 원인이 `가난`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로 인해 사람을 억압하면 부자가 빈자를 억압하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역설했다.

“때문에 유명한 학자 막스 베버는 역사상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마저 넘어서는 치열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무적 실패 즉 파산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인데, 언론에는 기업의 성공사례만 보도된다”면서 “그것은 개가 사람을 물면 보도되지 않는데, 사람이 개를 무는 이상한 사태가 보도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한다.

현실은 김 변호사의 주장에 가깝다. 음식점을 차리는 자영업자는 대략 2,3년 내에 대부분 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업 실패로 교도소에 가고 산 속으로 숨거나,  외국으로 도피하는게 한국의 현실이다. 성공사례는 아주 드문 예외일 뿐이다.

“수 년 전에 모 서울시의원이 채무 문제 때문에 자산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일도 있었고, 채권자가 채무자를 죽인 일도 있었던 것은 채무자와 채권자간 갈등이 첨예하다는 의미”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최소한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는 서로를 해하지는 않는 관계라는 것. 

◆ "파산법정이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아..채무자 자존감 찾아야"

이처럼 금융 산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 탓인지, 김 변호사는 채무자 입장에서 파산문제를 파고드는 변호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변호사를 먹고 살게 후원해주는데, 힘든 이들에게 수임료로 200만원, 500만원을 받게 되면 최대한 이들에게 만족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실 법을 대리해주는 건 실무적으로 큰 노력이 들지 않고 50만원을 받아도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채무자들이 자존감을 찾게 하고, 미래를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호사들은 채무자가 파산선고를 받아 면책을 통해 빚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은  바른 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면책한다고 생활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게 아니며, 파산법정이 기업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며 “단지 시간을 벌면서 안전하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줘야 하는 게 파산변호사가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가난을 해결해주는 것은 정치인들의 책임이며, 법은 빚 해결이 아니라 채무자가 쫓겨 다니는 상황을 최대한으로 막아주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다반사가 될 기업구조조정과 관련,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그는 “정부가 법정에 사안을 오픈해 해결하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관치금융으로 해결하려던데 원인이 더 있으며 최근 도입하려는 프리패키지드 워크아웃도 마찬가지”라며 “법률가들이 신뢰에 따라 운영해가면 되는데 지금은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가 없는 점이 문제”라며 법률가들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