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출처=위키미디어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국에 500억달러(약 58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며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IT 기업에 비호의적인 트럼프 정부에 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한 이유는 스프린트와 T모바일 합병을 재시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는 "손 회장이 미국에 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5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동의했다"면서 "손 회장이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ABC 뉴스 캡처, 출처=트위터

트럼프, 손정의 의견 일치 하나?

손 회장은 IT 업계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여준 인물이다. “내 목표는 IT 업계의 워런 버핏이 되는 것”이라며 지난달 7일 소프트뱅크 기업설명회(IR) 자리에서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전 세계 IT 기업에 투자할 1000억달러(약 100조원)의 ‘소프트뱅크비전펀드’를 만들기도 했다.

서로 반대 길을 걷고 있던 트럼프와 손 회장이 만난 지점은 AT&T의 타임워너 인수 반대와 컴캐스트의 NBC유니버셜 인수합병 반대다. 트럼프는 후보시절 이동통신기업 AT&T의 미디어기업 타임워너 인수를 반대했다. 두 회사의 합병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트럼프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막을 것"이라며 "너무 많은 권력이 극소수의 손에 놓인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어 "만약 선출되면 2011년 있었던 컴캐스트와 NBC유니버셜의 인수합병도 재검토하겠다"며 "애초에 허가해서는 안 되는 거래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2013년 미국 통신사인 스프린트와 T모바일 합병을 추진했다. 당시 미국 1·2위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AT&T에 대항하기 위해 스프린트와 T모바일을 동시에 인수하려고 했다. 스프린트를 220억달러(약 25조7000억원)에 인수했지만 미국 당국이 반독점규제법에 위반된다며 스프린트의 T모바일 인수를 승인하지 않았다.

손 회장은 이후 AT&T와 타임워너의 인수합병 건에 대해서 "미국 정부가 내 건은 거부하고 AT&T와 타임워너 건은 승인한다고? 이 나라에 정의가 어디 있느냐"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전문가들은 손 회장의 500억달러(약 58조원) 투자가 스프린트와 T모바일 합병을 재시도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줄곧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지만 최근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는 트럼프다. 소프트뱅크는 트럼프가 앞으로 강경 노선에서 벗어나 소프트뱅크에 긍정적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는 듯이 보인다.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미국시장에서 재도약을 시도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동안 손 회장은 미국에서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소프트뱅크 인수 이후 스프린트는 꾸준히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실적이 개선돼 3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동기 대비3% 증가한 82억4700만달러(약 9조3300억원)를 기록했다. 스프린트의 매출액이 증가세를 보인 것은 2년 만이다. 적자 폭도 1억4200만달러(약 1658억원)를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 5억8500만달러(약 6831억6000만원)의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지만 여전히 미국 시장 4위 통신사다.

트럼프 입장 바뀔까?

트럼프 당선인은 보호무역주의로 백인 노동자층의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성과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골칫거리며 멕시코와 중국, 일본에 높은 관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TPP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출범한 자유무역협정(FTA)의 한 형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 공동시장을 이루는 게 최종 목표다.

세계화로 빼앗긴 일자리를 찾아오겠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탈퇴하고 강경한 무역조정관을 임명할 것이며, 발효된 지 20년이 넘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무역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관세 부과 같은 방법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탈퇴하기보다는 내용을 대폭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가 탈퇴가 아닌 내용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NAFTA에서 탈퇴하는 것이 경제적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NAFTA 회원국인 캐나다·멕시코는 미국의 공급 체인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부품이 국경을 오가는 경우가 많아 NAFTA에서 탈퇴하면 미국 제조업의 생산에 혼란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이번에는 IT 기업에 화해의 손짓을 보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 실리콘밸리와 적대 관계였다. 실리콘밸리 주요 대다수 기업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만 유일하게 트럼프의 편에 섰다. 트럼프의 강경한 발언과 정책도 IT 업계와의 불편한 관계에 한몫했다. 망 중립성에 반대하고 실리콘밸리의 구성원인 이민자들을 겨냥한 강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IBM이 해외로 일자리를 빼돌린다고도 말했다.

이랬던 트럼프가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 CEO들과 오는 14일 모임을 할 예정이다. 대선 당시 반대 진영에 섰던 업계에 화해의 손길을 내민 셈이다. 팀 쿡 애플 CEO, 제프 베조스 아마존의 CEO 등 실리콘밸리 주요 인물들이 모일 예정이다.

강경한 보호무역 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가 소프트뱅크의 투자로 다른 행보를 보일지 앞으로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