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주 미국과 군사적 경제적 ‘단절’을 선언했을 때, 많은 필리핀 사람들은 그의 발언이 외교적 수사의 범위를 넘었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의 발언으로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기업들, 특히 미국 회사들의 콜센터와 기타 임무를 대행하고 있는 대기업들을 전율케 했다고 CNN이 24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크리스티나 컨셉션社는 미국 다국적 기업의 급여 및 회계 업무를 대행하는 회사로 500명의 필리핀인을 고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 고객들로부터 두테르테의 선동적 발언을 묻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 직면한, 이 나라의 대기업들은 긴급 모임을 갖고 두테르테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미국 회사로부터 업무처리 아웃소싱(BPO)을 받고 있는 크리스티나의 회사는 아직 성장하고 있지만, 금년 들어 작년 보다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테르테의 발언으로 아웃 소싱 업계에 또 다른 역풍을 맞을까 우려하고 있다.

필리핀 IT 업무 절차 협회에 따르면, BPO 업계는 올해 말까지 130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미국 대기업을 위한 고객 서비스 및 기술 지원 전화 응답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 센터에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필리핀 BPO 산업의 80% 이상이 미국 고객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BPO 산업은 필리핀 경제의 성공 사례 중 하나다.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도 지난해 필리핀 경제가 6.9%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BPO 산업 분야의 도움이 컸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일하는 콜센터 직원들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정치적, 경제적 단절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국 회사인 텔레텍(Teletech)에 근무하고 있는 마리아 마르호리에 곤살레스는 필리핀과 미국 간 관계가 약화되면 자신의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 생각에는 두테르테가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BPO 산업과 함께 필리핀 산업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인력 송출업도 양국 관계 악화의 불똥이 튀는 곳이다. 필리핀은 대표적 인력 수출 국가로 중동이나 싱가포르, 미국 등에 건설 인력이나 가사도우미 등을 수출해 송금 받은 돈으로 국가 재원 일부를 충당해 왔다.

그러나 두테르테의 반미 발언이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해 이 산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 야당의원인 게리 알레하노는 “미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송금 규모는 필리핀 사람들이 전체 인력송출로 벌어들이는 돈의 35%에 달한다”면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파장을 우려했다.

컨설팅 회사 메이플크로프트의 아시아 분석가인 유프리카 테일러는 그의 연구 보고서에서 “두테르테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고 있지만, 중국 회사들이 미국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필리핀이 미국을 등지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지난 주 한 말의 충격을 의식한 듯, 두테르테는 파급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신의 발언이 ‘동맹의 단절’이 아니라 ‘외교 정책의 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주호 은행의 아시아 전문가 비시누 바라탄은 "두테르테가 거칠고 돌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코 경제에 방해가 되는 길은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