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는 '전쟁'이에요. 맨발 청바지 차림으로 강아지를 끌고 와서 맥주를 마시며 일을 한다? 저는 그런 건 믿지 않아요. 입주사 계약서에도 ‘비즈니스 정장(Business Attire)’이라고 드레스코드를 명시해둘 정도죠.”

성공한 한상(韓商)으로 알려진 김은미 대표가 운영하는 CEO SUITE는 인도네시아에 본사를 둔 글로벌 서비스드 오피스 업체다. 빌딩의 일부를 임대해 기업들에 사무실을 대여하고 오피스 장비, 비서, 통역, 법률·회계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전문업체를 서비스드 오피스라고 한다. 12월 오픈 예정인 강남 파르나스타워점에서 만난 김 대표는 비슷한 재임대 모델로 몇 년 전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전 소위 말하는 ‘물 관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꼼꼼한 스크리닝을 통해 입주사들을 선정합니다. 막 창업한 대학생 창업가들과 이미 업계 선두에 있는 기업들이 서로에게서 조언이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협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죠.”

업계 베테랑답게 여느 때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다. 김 대표는 1997년 CEO SUITE의 자카르타 1호점을 낸 이후, 현재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9개 도시에서 18개의 비즈니스 센터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단 한 번의 광고나 대규모 투자 유치도 없이 매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 회사는 연매출 450억원의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창업 중심 대학인 뱁슨 칼리지에서 김 대표를 ‘케이스 스터디(사례연구)'할 정도로 남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입주사 ‘물 관리’라니 이채롭기도 하고, 조금 차별적 발언인 듯도 하다. 들어보니 실상은 달랐다. “입주사 중 90%가 외국계 회사이고 그 외에 법무법인, 회계법인, 여행사, 헤드헌터, 교육 전문가, IT 전문가, 온라인 마케팅, 인테리어 전문가 등 다양한 회사를 입주하게 해 커뮤니티 안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각 지점이 백화점처럼 그 안에 입주사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모두 갖출 수 있도록 유치하는 거죠.”

과거에는 건물주들도 서비스드 오피스 업체를 기피할 만큼 서비스드 오피스 입주사들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번듯한 투자회사라고 입주를 했다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기도 하고, 임대료를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진상’ 고객도 많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김 대표는 “공간이 필요한 영세업체들을 여과 없이 다 받는다면 ‘공간 셰어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제공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오피스 서비스다.

“공간은 어디에도 있어요. 스타벅스에서도 일할 수 있고 재택근무도 많이 하죠. 그러니까 우리가 고객에 제공하는 것은 서비스지 공간이 아니에요. 1인 창업자들이나 해외에 처음 진출하는 기업도 현지법에 따라서 세금을 내고, 비서나 통역의 도움도 받아야 하죠. 사무기기부터 IT 기술 지원이나 현지 홍보 등 다른 서비스도 지원받아야 되고요. 저흰 그런 전반적인 모든 오피스 서비스를 고객에 주는 겁니다.”

김 대표는 호주 유학 이후 호주의 유명 서비스드 오피스 업체 서브코프에서 일을 배웠다. 19년 전 창업을 하고 처음에는 호주식으로 사업을 경영을 했는데 ‘아시아에서는 아시아식 공간, 아시아식 경영이 필요하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 CEO SUITE 강남 파르나스 센터점. 출처=CEO SUITE

처음 화교들이 좋아하는 ‘풍수지리’를 지점들에 활용해봤다. “유명 풍수 전문가를 불러다가 복을 불러오는 인테리어를 했다고 하니까 아시아 사람들뿐 아니라 서양 사람들도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고요. 눈앞에 가리는 것 없는 조망, 심리적인 안정을 더해주는 벽의 색깔, 대리석의 문양, 조각과 그림, 조명과 음악, 라운지의 커피 냄새 같은 것들도 우리의 감정을 만들고 감성을 지배하는 에너지 아니겠어요?” 하루 종일 사무실에 있는 입주사들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공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무실의 모든 서비스가 아웃소싱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무기기는 물론 직원, 사무공간 모두 외부의 서비스 전문가들이 공급해주는 시대라고 한다. “동남아는 외국계 투자회사가 많아 변화가 빨라요. 한국도 큰 사무공간을 임대해서 리셉션부터 비서, 네트워킹 전문가를 모두 채용해야 하는 시대가 갈 거예요. 이제는 누가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의 경쟁이 될 겁니다.”

▲ CEO SUITE 강남 파르나스 센터점. 출처=CEO SUITE

업계 대형사들이 더 많은 지점을 내고 덩치를 키우면서도 투자금은 거둬들이는 최근에도 그는 오히려 투자를 더 늘렸다. 상하이 월드파이낸셜센터, 하노이 베트남 롯데센터 등 최신의 프라임급 빌딩만을 고집했다. 시설, 인테리어, 장비 등 모든 것을 고가의 수입제품으로 꾸며 ‘하이엔드’ 오피스를 더욱 지향해왔다. 그는 오는 12월 강남 파르나스타워에서 서울의 두 번째 지점이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올해 19주년인데 1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이 전체의 40%가 넘어요. 아시아 문화 특성상 아이들을 많이 낳으니까 출산휴가를 4번씩 가는 직원들도 있고요.” 그는 아시아 각국의 직원들로 구성된 직원들에 대해 말할 때 항상 ‘팀’ 혹은 ‘우리’라고 칭했다.

그는 또 “물론 이윤은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이윤이 ‘우선’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사를 꼽아본 적도 없단다. “투자하겠다는 제안은 수시로 받아요. 지금 업계가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 상장업체는 딱 2개뿐이거든요. 글로벌 시장에서는 개인 회사는 거의 모두 팔려갔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회사를 부풀리고 엄청난 자본을 가진 투자자에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고객사들끼리 서로의 서비스나 상품을 소개하고 채팅이나 회의도 진행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준비 중으로 연말 출시를 앞두고 있다. 현재 돈이 많이 몰리는 아시아 도시들의 구매력을 가진 회원사들인 만큼 그 시너지에 기대가 크다는 첨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