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한국로봇산업협회

“왜 한국에 진출 하냐고요? 로봇기업으로서 한국 진출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은 매우 격동적인 시장입니다.” 로봇공학의 선구자이자 괴짜 학자로 불리는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띄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전 세계 로봇과 인공지능 분야의 신화 로드니 브룩스가 12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로봇산업협회가 주관하는 ‘2016 로보월드’에 등장했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킨텍스 4홀 전시장 내 세미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하는 ‘2016 로보월드’는 국내외 최첨단 로봇 기술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로봇 행사다. 로드니 브룩스는 현재 산업용 로봇 전문업체인 리씽크로보틱스의 회장 겸 CTO이자 GE(General Electric)의 로봇자문위원회 위원, 도요타 인공지능연구소 ‘TRI(Toyota Research Institute)’의 자문위 부의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MIT 인공지능 연구소에 재직하며 새로운 인공지능 이론인 ‘행위 기반의 포섭 구조’를 제시했다. 이로써 그는 인공지능 발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룩스 회장은 기존 인지과학의 전통적 주장을 거부한 독특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행위 기반의 포섭 구조’란 뇌의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가 없이도 특정 행위에 대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원리다. 그는 곤충 로봇 ‘갠지스'(Genghis)로 포섭 구조를 증명한 바 있다. 개미 모양의 갠지스의 6개의 다리에는 센서가 부착돼 있다. 해당 센서들에 의해 다른 다리들이 반응한다. 중앙처리장치인 뇌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특정 행위에 대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포섭 구조를 ‘박스터’, ‘소이어’. 화성 땅을 밟은 첫 탐사로봇 ‘소저너’에 적용했다.

▲ 로드니 브룩스 방한, 기자간담회. 사진=이코노믹리뷰 김기림기자

로봇 시장 견인하는 '브룩스 사단'

전 세계 로봇 시장은 브룩스 회장의 제자들이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과 교감하는 로봇’이라는 슬로건을 기반으로 활약하고 있다. 청소 로봇시장의 선두주자 ‘아이로봇’은 브룩스 회장이 1990년 제자 2명과 함께 설립했다. 현재는 제자 중 한 명인 콜린 엥글이 경영하고 있다.

그의 제자 중 한 명인 신시아 브리질은 로봇과 인간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소셜 로봇 기업 투자유치에 성공했으며, 로봇 '지보'를 2014년 개발한 바 있다. 또 다른 제자인 헬렌 그라이너는 미국 최초로 상업 배달에 성공한 드론 기업 ‘사이피웍스’를 설립했다. 브룩스 회장은 소규모로 로봇회사를 창업하는 제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스승으로 알려져있다.

“로봇은 결코 인간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처럼 인지하고 행동하는 로봇과 산업용 로봇이 시시각각 등장하고 있는 지금 조만간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까? 브룩스 회장은 단호하게 “No!(그렇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과 별 차이 없고,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능력을 초월하는 로봇이 탄생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아주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라며 “적어도 500년은 걸릴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속도로 발전 중인 딥러닝 기술은 완성된 기술과 데이터 베이스 등이 로봇에 탑재될 뿐이지 이로 인해 로봇이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룩스 회장은 “로봇은 냉장고처럼 기계로 남는 것이 좋다”라며 “공장이나 산업 현장에서 로봇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로봇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사람의 지시를 받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협업 로봇’들이 더 많이 등장할 것”이라며 우려를 잠식시켰다.

어떤 로봇이 살아남을까?

브룩스 회장의 말처럼 로봇이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사람이 조종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인다면 미래에는 ‘협업 로봇’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재 중소기업들은 다양한 홈서비스용 휴머노이드 로봇들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로봇들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명확하지 않아 시장에 내놓고도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머잖아 로봇들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두고 브룩스 회장은 “현재 선진국을 비롯해 중국이나 멕시코 등에서도 공장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라며 “로봇은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할 수 없고 또 기피하는 일들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산업용 로봇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부족한 부분을 매워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에 주사위 던진 리쌍크로보틱스

브룩스 회장은 "한국은 가장 크고 중요한 로봇시장 중 하나"라며 "로봇 기업으로서 한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제조업 분야에서 로봇 생산 비중이 전체의 10%지만 앞으로 30%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룩스 회장이 이끄는 리씽크로보틱스는 최근 국내 공장자동화 부품 장비 및 3D 프린터 전문회사 TPC메카트로닉스와 계약을 맺고 10월부터 한국시장에 협업로봇인 '소이어' 공급을 시작한 바 있다. 소이어는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 정밀한 자동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스마트 협업 로봇이다.

로봇의 얼굴인 디스플레이를 통해 작업자와 상호 소통이 가능하다. 19kg의 빨간 고무 재질의 로봇인 소이어는 7축의 자유도, 0.1mm의 반복 정밀도와 최대 1260mm의 넓은 작업 반경을 가지고 있다. 바퀴가 달린 받침대를 통해 이동이 자유롭고 수행할 작업에 따라 전용 전동 그리퍼와 진공 그리퍼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이다. 같은 공간 내에서 작업자와 충돌이 있어도 관절에 내장된 토크 센서를 통해 즉각 정지할 수 있으며, 빨간 고무 재질의 외피와 우레탄 폼으로 덮여있는 관절 부위가 충격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할 수 있다.

TPC메카트로닉스는 “소이어의 부품을 다 더하면 약 5000만 원 정도다.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협업 로봇이며, 카메라의 이동 경로에 따라 디스플레이로 보이는 로봇의 눈이 같이 움직여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브룩스 회장은은 누구나 편리하게 세팅할 수 있으며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제공된다는 점을 소이어의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TPC메카트로닉스는 현재 한 국내 기업과 약 100여 대 정도의 소이어 계약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얼마큼 소이어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지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