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주주들이 힘이 강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삼성그룹과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방이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 낸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국내 대표 그룹사인 만큼 여타 그룹사들도 이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수혜주와 피해주에 대한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 20대 국회 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요약 [출처:하나금융투자]

현재 국내 재벌기업들은 야당의 지배구조 관련 법안 입법화로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전에는 삼성그룹과 관련성이 높은 법안 발의가 많았던 반면, 현재는 국내 재벌기업 전체, 더 나아가 그룹사들의 지배구조를 겨냥한 법안들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이어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금지하는 안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이 법안으로 인해 현대차그룹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법안의 통과여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이를 넋 놓고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기업들의 전반적인 순환출자 해소 움직임은 기존에 이어 가속화될 전망이다.

국내 그룹사들의 지배구조 개편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단연 삼성그룹이다.

한편, 지난 5월 31일 서울 고등법원은 소액 주주 제기 삼성물산 매수청구가격 소송에서 일성신약을 비롯한 소액주주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이 판결은 기존 자본시장의 판단을 뛰어넘는 것이다. 즉, 아무리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더라도 기업의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국내 재벌기업들의 ‘편법 승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국내 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등에 있어서 ‘주주친화 정책’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몇 수를 내다봤나

최근 삼성전자의 주가는 160만원 대를 넘어서며 지난 2013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를 갱신 중이다. 2013년 이후 부진했던 실적도 최근에는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주가 상승에 힘을 싣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실적이 삼성전자 주가 상승에 전부일까.

삼성전자는 지난 7월 28일 공시를 통해 오는 10월 28일까지 보통주 99만주·우선주 23만주를 사들이겠다고 공시했다. 이 중 지난 26일까지 삼성전자가 매입한 자사주는 보통주 기준 약 51만주에 달해 불과 한 달 만에 공시한 물량의 절반 이상을 사들였다.

▲ 삼성전자 주가 추이 [출처:한국투자증권]

중요한 것은 이번 자사주 매입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11조3000억원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함께 매입한 주식은 전량 소각하겠다는 발표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그 재원으로 잉여현금흐름을 꼽았다. 이는 상당히 특이한 경우다. 물론 자사주 매입을 위한 재원이 잉여현금흐름이라는 점에는 이상할 것이 없지만 기업이 막연한 ‘현금’이 아닌 구체적으로 ‘잉여현금흐름’을 지목한 것은 상당히 드물기 때문이다.

당시 이를 두고 두 가지의 시선이 엇갈렸다. 하나는 말 그대로 주주친화정책, 또 다른 하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친화정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이 ‘직접적’으로 ‘이재용 친화’라 할 수 있는지 여부에는 명확한 답이 없었다.

한편, 간접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삼성전자의 지분을 늘리기 어렵다면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높은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기준 삼성물산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40배를 넘는 수준이었으며 주당순자산비율은 약 3.3배였다. 반면, 삼성전자의 PER은 약 10배, PBR은 약 1.3배로 두 기업의 가치는 극명하게 대조됐다.

만약 무리하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높이려 할 경우, 이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합병 전) 합병 당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파고들었던 약점을 또 한 번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삼성그룹은 ‘바보’가 아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주주친화정책을 우선 순위에 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난 5월 고등법원이 소액 주주 제기 삼성물산 매수청구가격 소송에서 소액주주들에게 승소 판결을 낸 것은 삼성그룹에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또 간접적으로 삼성전자의 가치를 높여 향후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통해 ‘이재용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최소의 비용을 투입해서 지배구조 체제를 유지할지, 장기적 측면에서 지주전환을 시도할지는 기업의 선택일 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

오너 지분율보다 주주 표심 얻기

다만, 현 시점에서 볼 때, 삼성전자의 주주친화정책은 분명 적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실적 혹은 자사주 매입의 힘이든, 두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든 결과는 분명 성공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삼성전자의 ‘성공적’ 주주친화정책이 여타 그룹사의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생명 등 계열사의 주주가 아닌 삼성전자 주주에 달렸기 때문이다.

즉, 기존에는 오너일가와 주주가치가 동일선상에 있지 않아도 해당 기업이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삼성그룹의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경우 오너일가의 지배력은 상당히 약하지만 삼성전자의 주가가 상승하는 만큼 주주들의 표심에 힘입어 노이즈 없는 안정적 지배구조 개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국내 대표그룹인 만큼 여타 그룹사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각종 법안이 입법화 될 경우,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부담이 생긴다는 것도 국내 그룹사들의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도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강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배구조 관련주를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오너 지분율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피해주로 분류된 기업들을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