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슬라 모델 3 / 출처 = 테슬라 홈페이지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모터스가 한국 시장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테슬라는 전기차 부문 글로벌 선두 업체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벌써부터 들떠있는 모습이다.

초반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지난 8월19일 한국어 홈페이지 개설과 함께 사전 계약을 받기 시작했지만 차량 가격, 보조금 지급 여부, 인도 시기 등은 여전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홈페이지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다 여론의 질타를 받는 ‘촌극’도 연출됐다. 시장에서는 ‘테슬라 효과’로 인해 국내 전기차 문화가 성숙·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동시에 아직 ‘준비가 덜 된’ 테슬라가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테슬라, 한국을 향하다

테슬라는 2015년 12월 국내에 법인을 등록하며 본격적인 진출을 예고했다. 법인명은 테슬라코리아유한회사(Tesla Korea Limited). 2016년 6월부터는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에서 일할 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아직 누가 한국을 담당하게 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올 9월 개장을 앞두고 있는 ‘스타필드 하남’에 전시장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객들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19일 한국어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다. 이 곳에서 주력 차종인 ‘모델 S’, ‘모델 X’와 출시를 앞두고 있는 ‘모델 3’의 사전 계약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 차량의 주요 제원은 국내에서 판매 중인 경쟁 차종들을 단연 압도한다. ‘안전하면서 운전이 즐거운 차’를 목표로 개발된 모델 S의 경우 1회 충전 가능 거리가 트림에 따라 372~512km에 이른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에 이르는 시간은 3초가 걸리지 않는다.

사실상 경쟁 차종이 없는 수준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모델 대비 두 배 가까운 주행 가능 거리를 자랑한다. 가속 성능은 스포츠카 수준이다. 부분 자율주행 기술인 ‘오토 파일럿’이 장착, 편의성도 뛰어나다.

▲ 테슬라의 한국 홈페이지 메인 화면 / 출처 = 테슬라 홈페이지

“정보가 부족하다”

테슬라의 한국 상륙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아직 이렇다 할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형국이다. 8월 현재 테슬라 한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모델 S, 모델 X, 모델 3에 대한 간략한 소개 정보와 테슬라만의 무료 충전소 서비스인 ‘슈퍼차저’ 현황 등이다.

아직 국내에는 슈퍼차저가 들어오지 않은 만큼 중국·일본의 충전소 위치만 확인할 수 있다. 확장 계획에 대한 안내문에는 “성격상 정확한 날짜·장소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근 엘런 머스크 테슬라 CEO가 모델3에 대해 소개하는 발표 영상이 올라와 있지만 한글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다.

사전 계약을 받고 있지만 정확한 가격·인도 시기 등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모델에 따라 100만~500만원 가량의 계약금을 내야하지만 정보는 부족하다. 대표전화는 무용지물이다. 전화를 걸어도 “예약이 시작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는 자동응답 내용만 반복될 뿐이다. 고객 문의처를 신설해 별도의 이메일을 통해 질문을 받고 있긴 하지만 빗발치는 소비자들의 질문에 응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사실상 각 모델들에 대한 설명·사진자료를 제외하면 국내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는 셈이다.

웃지 못할 촌극도 연출됐다. 최근에는 홈페이지 내 지도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독도는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우를 범했다. 일각에서는 테슬라가 판매에 눈이 멀어 한국의 기본적인 정서조차 파악하지 않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 자료사진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테슬라, 매력적인 이름

테슬라의 한국 진출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 큰 매력을 바탕으로 국내 소비자들을 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테슬라도 이에 대응,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가 모델 S의 60kWh급 모델을 부활시킨 것이 국내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모델 S는 2012년 60kWh, 85kWh급 배터리를 장착해 출시됐지만 이후 70kWh, 90kWh로 각각 성능이 개선됐다. 하지만 최근 돌연 70kWh 모델이 60kWh 급으로 재조정된 것이다. 국내 기준에 맞춰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고객 뿐 아니라 자동차 업계에도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한국타이어, 만도, SK루브리컨츠 등이 각각 테슬라 제품에 부품을 납품하며 장밋빛 꿈을 꾸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은 전기차 시대 개화와 테슬라 한국 진출을 앞두고 눈치 싸움에 한창이다. 현재 테슬라 제품에는 일본 파나소닉사의 배터리가 단독 공급되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의 성공 여부는 ‘신뢰’가 좌우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테슬라는 그간 고질적인 생산 부족 등 문제 때문에 차량의 고객 인도 시기가 계속해서 미뤄져왔다. 모델 X는 물론 내년 말께 출시 예정인 모델 3 역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테슬라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국 보다는 제주도라고 하는 것이 맞다”며 “최소한의 슈퍼차저(충전소) 설치 이후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테슬라가 국내 고객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전기차 시장 리더답게 인프라 확대 등에 힘을 쏟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차량 인도 시기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테슬라 모델 S / 출처 = 테슬라 홈페이지

전기차 시대, 본격 개화하나

테슬라의 한국 진출이 확정되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충전 인프라 부족과 인기 모델 부재로 고전 중인 국내 전기차 시장이 크게 요동칠 것으로 기대된다.

8월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총 7종류다. 현대차는 최근 전용 친환경 플랫폼으로 제작된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내놨다. 기아차는 기존 차량인 쏘울과 레이에 EV 배터리를 장착해 선보였다. 한국지엠은 경차인 스파크를 기반으로 ‘스파크 EV'를, 르노삼성은 준중형 세단인 SM3를 바탕으로 ’SM3 Z.E.'를 판매 중이다. BMW와 닛산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i3’와 ‘리프’를 각각 수입하고 있다.

정부에서 전기차 구매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내연기관 차량을 대신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올해 1~7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한 전기차는 1427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 가량인 705대는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이다. 아이오닉이 7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다른 차종들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시장 규모도 미미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 시장에 등록된 전기차는 2013년 614대, 2014년 1315대, 2015년 2945대 등으로 점차 늘고 있다. 시장이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 자동차 판매(약 180만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를 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테슬라의 등장은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1회 충전 시) 가장 멀리 가는 차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인데 테슬라 모델들은 두 배 가까운 거리를 더 갈 수 있다”며 “모델 S와 모델 X의 경우 고급차·희소성을 추구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성향에 잘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테슬라 차량이 인기를 끌고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충전 인프라 문제 등도 해결될 것”이라며 “전기차 시장 전체에 활력이 돌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29일 <자동차산업의 전기동력 자율주행화 가속화> 보고서를 통해 테슬라 모델 3가 한국에 본격 출시되면 국내 전기차 수요 증대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위원은 “모델 3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전기차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며 “테슬라로서는 적기에 부품을 조달하는 문제와 미국 정부의 전기차 세금 감면 혜택이 내년이면 소진되는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내 부품 업체들이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에는) 배터리를 제외하고는 전기차 관련 경쟁 우위 부품이 없다”며 “완성차 업체는 다른 나라로부터의 부품을 조달 받는 방법 등을 통해 생존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부품업체는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 간 협업, 다양한 창업과 중소기업 육성 기반 강화, 융합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지원 확대 등이 필요하다”며 “미래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컨트롤 타워도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