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취임 전, KB금융은 말 그대로 리더십 붕괴 상태였다. 같은 해 초 발생한 고객정보유출 사태는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금융권 전체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갈등이 고조돼 KB금융은 설상가상의 혼돈 속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 했던가. 윤 회장은 ‘리더십 붕괴된 KB’에 무거운 짐을 진 상태로 발을 들인 만큼 부담이 배로 존재했지만 KB 내에서 리더십을 재건할 경우, 그 영광도 고스란히 배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기로에 섰다.

하지만 윤 회장은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22년을 활동한 베테랑이다. 이어 은행권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최고재무책임자(CFO), KB금융지주 재무담당 부사장 등을 역임해 일명 ‘재무통(通)’으로 불렸다.

재무담당자들은 숫자에 능한 만큼 무슨 일이 생기면 치밀하게 계산을 한다. 이렇다 보니 추진력이 강하기보다는 어떤 사안에 대해 깐깐하거나 보수적 성향을 지니기 마련이다.

물론 위험을 줄이는 것은 모든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따라서 이를 지적하기 어렵지만 인생에 굴곡이 있고 경제에도 호황과 불황이 있듯이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생각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KB금융이 대우증권 인수에 실패했을 당시, 역시나 윤 회장은 승부사 기질이 없다는 평이 쏟아지기도 했으며 KB금융의 고질병인 ‘인수합병 실패’를 이어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윤 회장은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과감히 베팅해 성공했고 KB금융을 인수합병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 재무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윤 회장의 베팅은 사실상 예측할 수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가 인수’ 논란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시장의 착각이었다.

KB금융이 현대증권과 주식교환방식으로 합병을 결정해 염가매수차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비상장 자회사인 KB투자증권과 상장사인 현대증권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불일치’ 문제도 동시에 해소했다. 아울러 현대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한다고 발표해 초대형 IB를 향한, 즉 리딩뱅크로서의 도약을 강하게 암시했다.

KB금융의 현대증권 인수는 윤 회장의 리더십을 부각시켰다. 현대증권 인수를 위한 시나리오가 윤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추진된 것을 고려하면 윤 회장의 ‘로우리스크’ 성향이 그의 리더십을 ‘하이리턴’을 만든 셈이다.

윤 회장이 이번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사회의 지지가 있었다. KB 사태를 계기로 지난해 3월 KB금융의 사외이사 전원을 새로 선임했으며, 아울러 주요 측근들을 계열사 리더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KB 사태를 교훈 삼아 권력의지가 약한 인물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융당국의 외풍을 우려, 관치의 상징인 KB국민은행 상임감사 자리를 공석으로 뒀다.

이러한 과정을 볼 때, 윤 회장의 ‘로우리스크 하이리턴’ 리더십은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일단 합병은 성공했지만 윤 회장의 그림은 이제부터다. '조용한 카리스마' 윤 회장의 리더십이 KB금융그룹의 향후 그림에서 어떻게 또 다른 빛을 발할지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초대형 IB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KB금융이 글로벌 컴퍼니로 새롭게 자리매김할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