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다르파 이펙트

휴대전화 벨소리가 다급히 그를 찾는다. 취재 요청 전화인 듯하다. “잠깐 받아도 될까요?” 그가 정중히 물었다. 인터뷰 중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그만큼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휴보 아빠’로 더 유명한 그다. 휴보는 지난 2004년 탄생한 국내 최초 인간형 로봇이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다르파 로봇공학 챌린지(DRC)’에서 휴보가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로봇 선진국을 제치고 거둔 성과라 의미가 크다.

“DRC 우승 이후 사람들이 예전보다 내 말을 조금 더 귀담아 듣는 것 같다.” 오 교수의 말이다. 취재 요청은 물론 함께 일해보자는 이들이 늘었다. 인재를 추천해달라거나 강연을 요청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정부는 체계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나섰다.

 

사생활은 필요 없다

그래서일까. 오 교수의 미소 속에서 피로감이 보였다. 진중한 대담보다는 가벼운 수다가 필요한 시기였다. “취미가 뭔가?” 소개팅 단골질문을 세계적인 휴머노이드 권위자에게 던졌다. 그의 은밀한 사생활이 내심 궁금했다.

“로봇 만들기이다.” 이상할 것 없는 답변이다. 일과 취미가 하나라는 이야기다. 오 교수는 “몰입하는 사람을 보면 취미랑 본업이 일치한다. 그러니 사생활이라고 할 게 따로 없는 거다. 그런 사람한테 사생활이 뭐냐고 물으면 이해하지 못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한테 취미를 물으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라고 했다.

사생활을 모르는 그에게 간혹 불만을 표하는 제자도 있다. 본인이 사생활을 누리지 않는 만큼 학생들의 사생활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에 오 교수의 입장은 단호하다. “석·박사 과정에 놀러온 게 아니지 않나. 우리 경쟁자들은 세계 유수 대학 학생들이다. 그들이 과연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구하고 주말은 다 놀까? 학생이면 학생다워야 한다.”

 

독재와 뚝심 사이

오 교수는 주관이 뚜렷한 뚝심 있는 리더다. 소신껏 학생을 이끌어 최대 성과를 이끌어낸다. 그것을 두고 ‘독재’라 말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오 교수도 이러한 면을 인정했지만 당당하다. “리더십을 재치 있게 달리 표현하면 독재”라는 생각이다. 그는 “리더 없는 집단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매일 지지고 볶고 싸움만 하다 끝날 것”이라며 강력한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상 모든 게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윽박지르고 회유해도 말을 안 듣는다. 자기 뜻을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한다. 결국은 뚝심 싸움이다. 3년을 설득해서 잘못된 방향을 틀게 한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뚝심 리더십이 지금의 ‘휴보’를 낳은 셈이다.

▲ 사진=노연주 기자

아빠의 본심

자식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휴보 아빠는 자식 자랑보다는 겸손한 태도를 먼저 보였다. 휴보의 연구 성과를 묻자 “어차피 우리는 로봇 선진국을 따라가는 입장이다. 세상에 없는 기술이 아니라 선진국에 다 있던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자부심이 얼핏 보였다. “휴보가 DRC에서 우승했다고 ‘최고의 로봇’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 다만 세계 최고 기술 선진국의 로봇과 대결해 1등을 했다는 것은 이제 그 누구도 무시 못할 기술력을 우리가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에는 실패의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껏 휴보와 휴보 아빠에게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은 없었을까. 오 교수는 “힘든 적은 당연히 있었지만 극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진국은 이미 다 극복하고 넘어간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헀다”고 했다.

휴보는 완성형이 아니다.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란 뜻이다. “정말 알 수 없다.” 2020년 휴보의 모습을 묻자 오 교수가 그랬다. 그는 “휴보가 완성되는 날은 50년은 물론 100년 뒤에도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목표는 명확하다. 휴보를 조금 더 안정적이고 강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중 지원 반대?

휴보는 앞으로도 선진국 로봇들과 비교될 운명이다. 오 교수는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런 그에게 최근 시판에 돌입한 ‘페퍼’ 이야기를 꺼냈다. 어쩌면 민감한 화두다. 그는 이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가 1분 만에 1000대가 팔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사진=노연주 기자

오 교수는 의연했다. “페퍼는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실질적인 업무를 하기에는 조금 역부족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페퍼의 기술적인 성취도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냐고 묻자 ‘의연함’은 ‘자신감’으로 변했다. 그는 “감정 인식-표현 기술은 국내·외에서 기초연구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며 “목표만 결정되면 우리도 페퍼와 같은 로봇을 개발할 수 있다. 페퍼 연구진들이 고생한 만큼만 하면 누구든 가능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상업화가 만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상업화에 초점을 맞춘 지원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오 교수는 “선진국들은 휴머노이드를 기초연구 분야로 인지하고 폭넓은 연구를 허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상업화라든가 결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집중 지원을 하고 2년 후에 결과가 안 나왔다고 집중 포화를 퍼붓는다. 우리 연구 풍토가 이렇다”며 “매일 결과를 내라 하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집중 지원보다는 10~20년 꾸준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짝 관심 이후

“여론은 걸었으니 뛰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뛰게 되면 뛰었으니 날아야 하지 않겠다고 그런다.” 오 교수의 말이다. 그렇다고 여론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그는 “내 일로 생각했으니 적은 지원금만 받고도 여기까지 팀을 끌고 온 것이다. 돈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이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휴머노이드 연구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휴보 아빠일 것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지금 이 시점에 학창시절로 돌아가게 된다면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가. 로봇 빼고.” 오 교수는 의외로 쉽게 답했다. “물리학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싶다. 물리학은 호기심을 가진 모든 사람의 로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