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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도망가는 기업들] 다(多)규제-고(高)생산비용 '한국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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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공동화 경제뿌리 흔들린다

출처 : 뉴시스

최근 들어 각종 기업규제 법안이 경제민주화로 둔갑하면서 기업들을 더욱 옥죄고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고착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해 해외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기업들을 붙잡아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 10월 경기도 이천에서 LG실트론 기업 간담회가 있었다. 정부가 발표한 제3차 투자 활성화 대책에 따라 LG실트론 공장 증설에 관련된 논의가 이뤄졌다. 경기도 이천시와 LG실트론 관계자들은 향후 LED 시장의 개선에 앞서 8만9788㎡의 기업 소유의 터 중 3만㎡를 활용해 사파이어 웨이 생산량을 10배로 늘리기 위한 공장 증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정부 측은 LG실트론의 공장 증설은 현행법(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위배될 수 있다며 허가하지 않았다. 이에 이천시 한 관계자는 “LG실트론은 공장 증설에 필요한 시설투자에만 3000억원이 투입되며 300여 명의 고용이 창출된다”며 “지역 경제가 얼어붙어 있는데, 이런저런 법안과 규제로 기업 투자를 막는다면 지역주민들은 다 죽으란 소리”라며 안타까워했다. 일각에선 “내년까지 증설허가가 나지 않는다면, LG실트론이 동남아시아, 중국 쪽으로 공장 부지를 물색해 이전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국내기업의 ‘탈(脫)한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우선 국정과제로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제시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기업들은 해외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다. 다(多)규제-고(高)비용의 열악한 기업환경과 중국, 인도 등의 거센 추격의 틈새에 끼여 있는 기업들에게 생산기지 이전은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제민주화 바람과 맞물려 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들은 국회에 표류해 있고, 법인세 인상,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 보류 등으로 기업들의 발을 묶어놓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을 제고하고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가장 효율적 방안은 기업환경을 개선해 투자를 유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로 새는 투자, 해외투자 쏠림현상 두드러져

최근 10년간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갈수록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반면 해외 직접투자는 연평균 17%가량 증가해 대조를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03~2012년 국내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연평균 17.2% 증가한 데 비해 같은 기간 국내 설비투자는 4.0% 느는 데 그쳤다. 더욱이 기업들의 투자 집행률은 매년 낮아지고 있어 실제 그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대다수 기업이 경제민주화 규제를 둘러싼 불확실한 국내 경영여건 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올해 국내 투자계획을 거둬들이거나 보류했다”며 “투자는 기업 대외비이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지만, 통상 연초 투자계획보다 100~120%를 이행하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기업들이 확실히 투자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해외 투자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수출입은행 해외 투자 통계에 따르면 해외 직접투자 연평균 증가율은 1993~2002년 10.7%에서 2003~2012년 17.2%로 상승했다. 이러한 연평균 증가율은 외국 대비 높은 수준으로 전 세계(12.4%), G8(11.9%)와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 주력 수출 품목의 해외 현지 생산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 TV, 스마트폰, 등 주요 IT제품의 해외 생산 비중은 70%에 육박하고 자동차도 40%까지 상승했다. 최근에는 석유화학, 철강, 전자소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라인과 R&D 등 핵심부문도 해외 직접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 설비투자 위축 지속…내수경기도 악화

국내 설비투자 부진은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제조업은 한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28.1%를 차지할 만큼 경제성장 기여도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1970년부터 지난해까지 주요 산업별 평균 성장률을 보더라도 제조업은 10.60%로 서비스업(6.83%), 건설업(5.87%), 농림어업(2.10%)보다 월등히 높아 한국 경제의 고성장을 주도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설비투자가 저조하면서 제조업의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1971~1979년 제조업 연평균 성장률은 18.2%였으나, 1980년대 11.15%, 1990년대 7.91%로 감소했다. 2000년 이후는 6%대(6.99%)까지 하락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1.5%를 나타냈으며 지난해에도 2.2%로 저조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기업들이 국내 설비투자를 줄이고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산업 공동화 현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국내 산업기반 및 성장 잠재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 투자 확대→고정자산 투자 감소→고용불안 및 실업증가→소비감소→내수부진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산업 공동화 현상은 물론 국내 경제의 성장 잠재력마저 더욱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실제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이 하락하는 반면 해외 직접투자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기업 내 국내인력 비중이 해외인력에 추월까지 당했다. 국내 대표적인 IT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보면 국내와 해외 고용 차이가 확연해진다. 삼성전자는 이미 2011년 해외인력이 11만 명을 넘어서면서 국내인력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지난 4년간 총 8만 명의 인력이 증가한 가운데 국내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단지 8%에 불과하다. LG전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LG전자는 이미 해외인력(2011년 기준 5만8000여 명)이 국내인력(3만2000여 명)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기업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해외인력 비중도 10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1년 사업보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88개 기업을 대상으로 직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 고용인원 78만5000여 명 가운데 해외인력이 32만으로 집계됐다. 전체 인력 중 41%가 해외인력인 셈이다. 오 교수는 “생산기지 이전에 따른 기업 매출 구조의 변동 때문에 해외인력이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해외 생산기지 확대→ 해외매출 증가→해외인력 증가로 이어져 상대적으로 국내 고용의 증가율이 낮아진 셈이다.

이에 오 교수는 “해외시장 개척과 리스크 분산을 위한 해외 생산기지 이전은 막을 수 없지만, 국내에 공장을 두고 기업 경영을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과 기업규제, 투자환경이 기업들의 이탈을 가속화했다”며 “정부는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해 해외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기업들을 붙잡아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다(多)규제 “기업하기 힘든 나라”

최근 대중국 투자 확대를 결정한 대기업 한 관계자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저렴한 인건비 이점이 사라졌다”며 “하지만 기업규제, 투자환경, 전기료 등을 감안하면 아직까지는 국내보다 신흥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이 낫다”고 꼬집었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에 비해 체감금리 평균 2%, 법인세율 3.2%, 공장분양가 4배, 물류비 1.9배, 임금수준 8배나 높다. 공장설립 시 필요한 서류도 중국은 18.2개로 한국(34.6개)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들어선 순환출자금지법, 상생법, 일감 몰아주기 과세, 화학물질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 기업규제 법안이 경제민주화로 둔갑하면서 기업들을 더욱 옥죄고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반면 기업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보류 중이다. 지난 11월 경제단체들은 정치권에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경제활성화를 위해 시급한 법안들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지만 아직 국회에선 답이 없는 상태다. 특히 경제계는 “외국인투자촉진법은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필요한 법안”이라며 “연내 꼭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 법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는 SK종합화학과 SK루브리컨츠가 각각 일본 JX에너지와 9600억원, 3100억원 규모의 파라자일렌(PX) 생산공장 합작투자를, GS칼텍스 역시 일본 다이요오일·쇼와셀과 1조원 규모의 PX 합작투자를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외촉법 개정이 SK와 GS에 국한된 특혜법이 아니냐는 주장에 재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투자를 하더라도 그 자체를 부도덕한 일로 몰아가는 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외국계 기업과 합작 투자에 제한을 받는 국내 손자회사는 총 549개사에 이르고 이 중 중견?중소기업도 252개사가 포함됐다”며 “앞으로 많은 기업이 합작 투자 유치에 제약을 받는 잠재적 피해자가 될 것이며 이에 따른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SK와 JX에너지의 1조원이 넘는 투자는 화학플랜트 건설이 한창인 울산 지역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1만 명 가까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만약 이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국내 화학산업에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연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SK와 GS가 TPA(테레프탈산)의 원료인 PX 공장을 짓는 이유는 중국이 아직 손을 대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라며 “중국이 PX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벌이기 전에 시장을 선점하지 않으면, 석유화학 분야에서 한국이 경쟁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고(高)생산비용으로 허리 휘는 기업들

높은 생산비용, 경직된 노사관계, 반기업 정서도 기업들의 ‘한국 탈출’을 가속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산업용 물값·전기료, 임금, 산업단지 땅값 상승률은 ‘생산요소 비용’ 증가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로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는 이유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00년 이후 13년 동안 산업용 물값·전기료와 임금은 2배, 산업단지 땅값은 3배가량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2011년 8월 이후 2년 3개월 동안 모두 5차례 인상돼 누적 인상률이 40%에 달한다. 이에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환율과 불확실성 등 글로벌 경제 탓에 영업이익 등이 대폭 줄어드는 상황에서 연간 10%에 가까운 전기료 인상은 죽으란 소리”라며 “전기사용 비중이 높은 철강과 석유화학업종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가 전기요금 인상이다”고 말했다.

높은 임금수준과 경직된 노사관계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통계별로 다소 증가율 차이는 있지만,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임금은 전반적으로 100% 안팎의 증가율을 보였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한국의 시간당 제조업 보상 비용은 지난 2000년 9.6달러였지만, 지난해에는 20.7달러로 올랐다. 115.33% 상승한 것이다

이에 반해 생산성은 임금수준에 비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차의 경우 울산공장에서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30.5시간인 반면 베이징현대 공장에서는 19.5시간이면 된다. 현대차 국내직원이 베이징 직원보다 10배 가까운 임금을 받고 있지만 생산성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공장에서 노사갈등으로 조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올해 파업으로 2조원 이상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현대차 울산 4공장에선 1000억원을 투입해 설비를 증설했지만 5개월째 정상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협의가 돼야만 인력 투입이나 새로운 작업 개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본적인 계약과 법률의 문제를 떠나 정치적인 봉합으로 일관했던 노사문제도 기업의 허리를 짓눌렀다. 대표적인 사례가 통상임금이다. 노사 모두 직무급과 직능급 지급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능력에 따라 평가받기를 원치 않은 상황들을 서로 알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힘의 논리’로만 해결하려 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은 데다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 현실에 맞지 않는 법안들을 기업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며 “각종 규제와 비용 부담으로 기업을 옥죄면 추가 고용과 시설 투자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버티지 못하고 해외로 나가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현대차는 거듭되는 노조의 파업, 낮은 생산성, 높은 임금 등 국내 고비용 생산 환경 때문에 무게중심을 해외 생산으로 옮기는 경영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현대차는 노조 파업을 틈타 미국 조지아주와 접촉해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다이모스의 부품공장을 유치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지금 정상적 성장궤도에 안착하느냐 아니면 다시 저성장의 늪에 빠지느냐 중대한 분수령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투자 활성화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광범위하게 제기됐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1본부장은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만큼 정부가 기업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개선하고 투자촉진을 위한 정책을 펼쳐 국내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규기자 ksgjin007@econovill.com

기사승인 2013.12.17  16: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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