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촛불 하나를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무작위성, 불확실성, 카오스도 마찬가지다. 나는 당신이 이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활용하기를 원한다.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책에도 인연이 있나 보다. 얼마 전부터 바탕화면에 ‘명언’을 하나 띄워 놓고 컴퓨터를 켤 때마다 그 뜻을 되새기던 터였다. “개울 바닥에 돌이 없다면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고난 속에서도 노력하여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까지 오른 미국 컨트리록 가수 칼 퍼킨스의 말이다.

그런데 엊그제 편집국에 배달된 신간들을 보다가 마치 퍼킨스의 명언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듯한, 유난히 두툼한 책 한 권을 발견하였다. 바로 <안티프래질>이다.

 

안티프래질은 신조어다. 일반적으로, 프래질(fragile. 충격을 받으면 깨지기 쉬운)의 반대말은 ‘강건한(robust)’이나 ‘탄력적인(resilient)’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는’의 뜻을 지닌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 좀 더 정확한 반대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안티프래질은 현실 세계에서 있기나 한 것일까. 분명 이러한 물성(物性)은 접시나 자동차와 같은 무생물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런데, 1892년 독일 외과의사 볼프가 사람의 뼈에 일시적으로 스트레스가 가해질 경우 골 밀도가 더 높아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러한 ‘볼프의 법칙’ 류의 것들이 생명체나 생명체가 연결되는 시스템에는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당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당할 경우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통해 ‘원상회복’에 그치지 않고 ‘성장’까지 체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외상 후 성장(PTG)’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생명체의 진화를 비롯하여 문화, 사상, 정치시스템, 기술혁신, 기업의 생존, 훌륭한 조리법, 도시의 성장, 적도 지방의 삼림 등도 스트레스, 무질서, 가변성으로부터 되레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안티프래질 이론을 요약하면, 미래에 닥칠 충격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므로 현시점에서 추정 가능한 프래질(허약성)을 최대한 제거하고 안티프래질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대지진 발생 시 부실한 현대적 빌딩이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보다 더 프래질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므로 당장 건물의 허약한 부분부터 제거하는 게 맞다는 얘기다.

그러면, 어떻게 프래질을 줄일 것인가. 작은 것이 확실히 덜 프래질하다. 저자는 특히 ‘규모의 경제’는 오만한 가설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덩치를 키우려다 망한 기업이 국내에도 무수하다.

프래질 제거에는 양극단의 조합을 추구하는 ‘바벨(운동기구) 전략’도 유효하다. 재산의 90%는 현금으로 보유하고, 10%를 가장 위험한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운이 좋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도 10% 이상은 잃지 않는다.

안티프래질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사커 맘(방과 후 자녀의 축구연습을 지켜볼 정도로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이 자녀의 안티프래질한 특성을 제거한다고 비판한다. 지나친 챙겨주기 탓에 아이들이 애매한 상황에 부딪히면 어쩔 줄을 모르는 멍청이가 된다는 것이다.

탈레브는 레바논 태생의 사상가다. 금융위기(2008년)를 정확하게 예측한 ‘블랙 스완(검은 백조)’ 이론으로 ‘월스트리트의 현자’로 불린다.

이 책은 754쪽이나 된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간만에 소장할 만한 책을 만났다.